산수국을 찾아서

2014. 9. 20. 17:25카테고리 없음



Last Summer in Cheju

 



 



 



 



 



 



 



 



 



 



 



 



 



 



 



 



 



 



 



 



 



 



 



 



 



 



 



 



 



 



 



 



 



 



 



 



 



 



 



 

Winter hydrangea

 


♧ 산수국 - 최원정

 

푸른 나비

떼 지어

꽃으로 피었다

그 꽃 위로

하늘빛 내려 와

나비방석 빚어 놓았으니

잠시 쉬었다 가자

다리 쭉 뻗고 앉아서

긴 호흡으로

가쁜 숨 고르며

갈 길, 서둘지 말고

가만히 봐

푸른 나비가

꽃으로 핀

저 고요한 날개짓

 

 

 

♧ 산수국꽃 - 김용택

 

아침저녁으로 다니는 산 아래 강길

오늘도 나 혼자 걸어갑니다

산모롱이를 지나 한참 가면

바람결처럼 누가 내 옷자락을 가만가만 잡는 것도 같고

새벽 물소리처럼 나를 가만가만 부르는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 자리를 그냥 지나갑니다

오늘도 그 자리 거기를 지나는데

누군가 또 바람같이 가만가만 내 옷깃을 살며시 잡는 것도 같고

물소리같이 가만가만 부르는 것 같아도

나는 그냥 갑니다

 

그냥 가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가만히 흔들렸던 것 같은

나무이파리를 바라봅니다

그냥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갑니다

다시 가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가만히 서 있다가

흔들렸던 것 같은 나뭇잎을 가만히 들춰봅니다

아, 찬물이 맑게 갠 옹달샘 위에

산수국 꽃 몇 송이가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나비같이 금방 건드리면

소리 없이 날아갈 것 같은

꽃 이파리가 이쁘디이쁜

산수국 꽃 몇 송이가 거기 피어 있었습니다

 

 

 

♧ 숲에서 듣는 소리 - 이보숙

 

언제부터 밀어올리고 있었나

깊고 어두운 땅 밑에서

연갈색의 솜털 안에 밥풀 알 같은 하얀 꽃순을

한여름을 향하여

내면에 가득한 수액 속으로

백자색의 꽃잎을 빚어내는,

녹색 잎새의 날카로운 톱니를 만들어 내는,

저 야성의 청초한 자태를 구성해 내는,

산수국의 힘찬 진동을 나는 듣고 있다

목덜미 속으로 기어드는 차가운 바람

내 가슴 자락에 부채질이라도 하듯

여기 저기 솟아나는 붉은 반점들,

깊이 남겨진 내 안의 상처들을 보듬으며

뽀얗게 돋아나는 연두빛 기운들

맑은 빛깔의 봄내음을 내게로

전송해 오는 소리

쿵쿵 땅 밑에서 들려온다

 

 

 

♧ 산수국 - 김인호

  --섬진강 편지20

 

보란 것 없이 사는 일

늘 헛되구나 그랬었는데

왕시루봉 느진목재 오르는

칙칙한 숲 그늘에 가려

잘디잘고 화사하지도 않은

제 꽃으로는 어쩔 수 없어

커다랗게 하얀, 혹은 자줏빛

몇 송이 헛꽃을 피워놓고

벌나비 불러들여 열매를 맺는

산수국 애잔한 삶 들여다보니

헛되다고

다 헛된 것 아닌 줄 알겠구나

 

도채비꽃이라 불리우는 탐라산수국 - 신비하고도 숭고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 우리의 토종 꽃나무입니다.

 

진짜 꽃의 수정을 위해서 헛꽃은 먼저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가운데 있는 양성화가 모두 피어야만 제일 나중에 헛꽃에도 자그마한 진짜 꽃이

한 송이씩 소박하게 피어납니다.
꽃잎은 넉 장이며 수술·암술을 갖춘 꽃이 제일 나중에 피어납니다.
이는 진짜 꽃을 위한 배려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덕망을 갖춘 꽃입니까?

가운데 있는 양성화가 수정을 마치고 나면 헛꽃은 임무를 다하게 됩니다.
가운데 있는 양성화가 지고 나서야 헛꽃의 양성화도 지게 됩니다.
열매가 맺힐 무렵이면 양성화를 보호했던 헛꽃은 서서히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열매를 여물기 위해서는 헛꽃의 영양분을 아낌없이 줘야 하기 때문에 헛꽃은

빛바랜 색으로 변하면서 주름만 남겨 지게 됩니다.
이는 마지막 남은 영양분까지 자식에게 주기 위한 어머니의 마음과도 같습니다.

오로지 자식만을 위해서 살다 보니 남은 것이라곤 메마른 살가죽에 주름투성이만

남아 있습니다. 수의를 입고 떠날 채비에 나섰지만 자식이 눈에 밟혀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매서운 한파에도 끝까지 매달려 있습니다.

주름투성인 마른 헛꽃은 한겨울에도 남아 있습니다.
죽어서도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차마 자식 곁을 떠나지 못하는 우리네 어머니의

마음처럼 곱기만 합니다.<제주투데이 문춘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