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난여름갑자기 Suddenly Last Summer

2016. 3. 21. 08:11카테고리 없음



Suddenly Last Summer

Suddenly Last Summer

Part 1

Part 2

Part 3

Part 4
이 영화는 유명한 극작가 테네시 윌리암스의 작품을 조셉 맨키위츠가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지난 여름 세바스찬과 그의 사촌 캐서린이 함께 떠난 휴가에서 세바스찬은 죽고 캐서린은 
정신이 이상해져서 돌아와 그 의문의 휴가에 대한 것을 풀어가는 내용이다.     
주립병원의 정신과 의사 쿠크로위츠 박사는 한참 딸리는 재정 때문에 애를 먹었다. 그래서 
모든 걸 포기하고 고향인 시카고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동네의 돈많은 미망인 
베너블 부인이 자기 조카딸 캐서린의 전두엽 절제술을 한다는 조건으로 엄청난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힌다.   
쿠크로비츠는 베너블 부인의 대저택을 방문한다. 쿠크로비츠를 맞은 베너블 부인은 어딘지 
정상이 아닌 듯한 모습을 보인다. 베너블 부인은 아들이 지난 여름 갑자기 외국의 휴양지에서 
죽었다며 그 때 함께 있다 미쳐서 돌아 온 조카 캐서린을 치료해 달라고 한다.   
쿠크로비츠는 이번엔 캐서린을 만난다. 캐서린은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세바스찬이 죽던 
순간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히스테리칼하지만 아름다운 캐서린은 베너블 부인이 자신을 
정신병자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베너블 부인과 캐서린 사이에 세바스찬의 죽음을 
둘러싼 말 못할 비밀이 있음을 직감한 쿠크로비츠는 캐서린을 데리고 병원으로 온다.   
베너블 부인은 조카 캐서린에 대한 뇌수술을 조건으로 새 병원 건물을 지어 주겠다고 하며 
압박하지만 쿠크로비츠는 진실 규명을 위해 수술을 미룬다. 쿠크로비츠는 캐서린과 이야기를 
나누고 캐서린의 입에서 세바스찬의 죽음에 대한 충격적인 얘기가 흘러 나온다.   
세바스찬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끝으로 영화가 끝이 난다. 지난 여름 갑자기 라는 영화는 
장면의 변화 없이 주인공들의 대사만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연극적인 분위기와 인간의 
탐욕과 신의 징벌이란 무거운 주제 때문에 다소 부담스럽지만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영화이다. 

막달라 마리아 1
사랑하며 믿는 마음(요한 20,3-10) 
요한이 전하기를, 무덤을 막은 돌이 치워져 있는 것을 보고 마리아는 곧바로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들에게 달려갔다고 한다.  마리아는 그들에게, 
“사람들이 무덤에서 주님을 빼돌렸습니다.  어디다 옮겨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2)라고 전했다.  
이 말에는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다.  시신을 찾지 못한 데 대한 실망이 있을 뿐이다. 
마리아는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고 곁에서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예수의 시신이라도 필요했던 것이다.  
“고통 속에서 위안을 찾을 길이 어디인지 몰랐던 것”이 바로 마리아가 겪은 고통의 주된 이유였다고 
아우구수티누스는 말한다(26). 
이제 부활의 경주가 시작된다.  시몬 베드로와 애제자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간다.  
요한이 베드로보다 빨라서 먼저 무덤에 다다랐지만 연장자에게 선두를 양보한다. 
베드로가 무덤으로 달려간다.  여기서 요한이 전하는 것은 그저 눈에 비친 대로 볼 줄밖에 몰랐던 
베드로의 태도다. “염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머리를 덮었던 수건은 염포와 함께 있지 않고 
따로 한 곳에 개켜져 있었다(요한 20, 6-7). 
베드로는 보되 이해하지 못했다.  무덤이 왜 비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한 말이 옳았음을 확인할 뿐, 그 사실의 의미는 알지 못했다.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베드로는 지성과 의지로 행동하는 사람의 표상이다.
머리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사람은 부활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다. 
전통에 따라 요한과 동일 인물로 간주되는 애제자가 베드로의 뒤를 따라 무덤으로 들어간다. 
“그는 보고 믿었다”(요한 20,8).  요한은 마음으로 보았다. 
사랑하는 마음은 이해하고 믿는다.  복음서에는 요한이 정확히 무엇을 믿었는지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주석에 의하면 그가 부활의 신비를 조금이나마 깨달았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그분이 죽은 이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서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요한 20,9).  
지성만으로는 부활을 믿을 수 없다.  요한처럼,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음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애제자는 예수를 사랑한 제자였을 뿐 아니라 “예수께서 사랑한 제자”이기도 하다. 
예수님한테서 사랑받고 있음을 마음 깊이 아는 사람을 부활을 믿는다.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고, 오래 가며, 죽음을 넘어서까지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믿는다. 
베드로도 요한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  마리아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열정을 다해 사랑하고 사랑에 자신을 내어준 여인만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이야기 나눌 수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죄 많은 여자였을 뿐만 아니라 사랑의 귀재다. 
야코부스 데보라진은 그녀가 한없이 사랑했으므로 죄를 용서받았다는 루가 복음서의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주님이 총애하시고 당신 사랑의 징표를 그토록 많이 드러내신 여인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다.  
주님은 그녀에게서 일곱 귀신을 내쫓으셨으며 당신 사랑의 불을 놓아 소중한 애인으로 받아들이셨다. …
정한 여자라고 욕한 바리사이, 게으름을 질책한 그녀의 언니, 낭비벽이 심한 여자라고 비난한 유다.  
이들과는 달리 주님은 늘 큰 사랑으로 그녀를 이해하고 용서하셨다.  미라아가 우는 것을 보면 주님도 우셨다.  
그녀를 사랑했기에 사흘이나 무덤 속에 있던 오빠를 부활시켰다”(Voragine 472). 
막달라 마리아만큼 많은 전설을 탄생시킨 성녀도 없을 것이다.  그녀의 모습에서 부활의 신비가 가장 잘 
이해될 수 있었으리라.  마리아는 무한히 사랑했고 예수님한테서도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죽음을 초월해서까지 이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 상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이제는 그녀 자신이 사랑의 원천이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오빠 라자로와 함께 프랑스 남부로 피신하여, 거기서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개종한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강론했다고 한다.  그 후 30년 동안이나 은수자로 살았는데, 기도시간마다 
천사들이 그녀를 하늘로 데리고 가 천상의 전례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부활날 이른 아침에 교회로 가면 천사가 그녀와 동행했다.  성체를 받아 모실 때 그녀의 얼굴은 태양처럼 빛났다.  
성체를 모신 후 그녀가 죽었을 때 “아름다운 향기가 온 성당 안에 퍼져 가득했고 그 후 7일 동안 
성당 안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이 그 향기를 맡았다”(Voragine 479). 
이처럼 예수 부활의 신비는 그녀의 죽음에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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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내면에 도사린 베드로의 모습을 아십니까?  혹시 요한과 막달라 마리아도 보입니까? 
그대 내면의 어느 부분이 만사를 지성적으로만 봅니까?  사람들을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은 또 어디입니까?  
그리고 어디서 그대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정열적으로 사랑합니까?  아니면 그대가 받은 그리스도교 교육에 
맞지 않기 때문에 열정적인 사랑을 금하고 있습니까?  그대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막달라 마리아가 죽음을 이기는 사랑의 신비로 그대를 인도하도록 그녀와 함께 가십시오.                                                                                                             안셀름 그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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