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화가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

2017. 5. 17. 01:57카테고리 없음


터너 - 안개속의 해돋이

Modern Rome

Mortlake Terrace

The Fighting Temeraire 전함 테메레르 마지막 항해
〈자화상〉
〈자화상>  런던 테이트 갤러리
터너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 풍경에 관심이 많았는데, 매일같이 템스 강변에 나가 선박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고 한다. 14세 때 왕립 아카데미 부설 미술학교에 들어가 수채화를 배웠으며, 
이듬해부터 아카데미에 꾸준히 작품을 출품했다. 이 시기에 그는 건축 사무실에서 일하며 잉글랜드, 
웨일스 등을 다니면서 수채화로 지형을 기록했다. 그는 이때의 경험으로 이후 영국 국내뿐만 아니라 
스케치 여행을 규칙적으로 다니게 된다.
유화는 20세 무렵 시작했는데, 1796년 유화로 그린 첫 작품 〈바다의 어부들〉을 아카데미에 출품한 이후 
몇 년간 자연 풍경을 유화로 그리기 시작했다. 〈바다의 어부들〉은 구름 사이로 달빛이 비치는 가운데 
어선들이 어둠 속에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로 떠나가는 풍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자연의 웅대한 드라마를 
몽환적으로 표현하는 그의 작품 세계는 이때 이미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국 화폐의 새 얼굴, 터너 (J.M.W Turner)
영국의 대표적인 화가인 터너(J. M. W Turner)가 20파운드 지폐의 새 얼굴로 선정됐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를 대신하게 될 터너의 새로운 20파운드 지폐는 
그의 초상화와 대표작 <해체를 위해 예인된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 T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가 함께 실릴 예정이며 이 지폐는 2020년부터 유통될 예정이다. 
1838년에 그린 이 작품은 1805년 트라팔가 전투에서 활약하며 영국 해군의 자랑이었던 유명한 전함이, 
찬란한 석양빛을 역광으로 받으며 최후의 닻을 내릴 곳으로 끌려가는 것을 그린 작품이다. 
“장대한 낡은 군함이 수치스럽게도 해체를 위해 끌려가는 그림. 피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죠. 안그래요?” 
007 스카이폴에 본 작품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을 마주한 제임스 본드의 뒷모습과 함께 이 대사가 흘러나왔었다. 
해가 지는 풍경 속에서 영국 해군의 위엄이었던 테메레르는 찬란했던 시대를 회상하듯 푸른 하늘을 등지고 
화려하게 빛난다. 반면 연기를 토하는 작은 증기선은 어둡다. 수평선을 곧 넘어갈 듯한 태양은 이러한 풍경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2005년 BBC의 여론조사 결과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으로 
꼽힌 바 있으며 영국 최대의 미술관인 내셔널 갤러리의 소장품으로 내셔널 갤러리 34번 전시실에 
영구 전시 중에 있다.

Palestrina - Composition
“터너 이전에는 런던에 안개가 없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터너는 자연이 만들어 낸 위대하고 웅장한 연극에 낭만적 감정을 담아 캔버스로 
옮긴 대표적 풍경화가다. 영국 근대 미술의 아버지로 여겨지기도 하며,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풍경화가로 
꼽힌다. 테이트 갤러리가 젊은 미술사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미술상인 터너상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는 1775년 4월 23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발사 아버지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어머니를 둔 하층민이었으나, 자신의 재능만으로 19세기 초 영국 화단을 평정한 풍운아였다.
〈눈보라-알프스를 넘는 한니발과 군대〉    					    					    																	    				
눈보라-알프스를 넘는 한니발과 군대
런던 테이트 갤러리

Morning amongst the Coniston Fells 1798
Oil on canvas, 123 x 90 cm
Tate Gallery, London 〈바다의 어부들〉 (바다의 어부들) 런던 테이트 갤러리 〈난파선〉에서 터너는 갑작스런 폭풍우로 조난당하는 수부들을 그렸다. 몰아치는 거센 파도가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하며, 휩쓸린 수부들은 그 앞에서 보이지도 않을 만큼 연약하다. 영국 사람들에게 당시 바다는 해외 식민지 개척이라는 ‘희망’을 의미했고, 영국 귀족들은 해양 풍경화를 앞다투어 저택에 걸어두고 경제적 풍요를 꿈꾸었다. 그러나 바다는 자연재해 등으로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비극의 현장이기도 했다. 〈비와 증기와 속도-그레이트 웨스턴 철도〉 〈비와 증기와 속도-그레이트 웨스턴 철도〉 런던 내셔널 갤러리 〈비와 증기와 속도-그레이트 웨스턴 철도〉는 증기 기관차라는 산업화의 대표적인 아이콘을 담고 있다. 기차가 뿜어내는 수증기와 비가 화면 전체에 어우러져 있는 가운데, 기차가 관객 쪽으로 다가오는 듯한 구도가 기차의 속도감을 한층 높인다. 관객은 마치 화면에서 기차가 튀어나와 자신을 덮칠 것만 같은 아찔함을 느끼는데, 이렇듯 그는 빛과 대기의 효과, 구도를 활용해 현장감과 운동감을 부여했다. 사진이 없던 당시 이런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연출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모네는 이 그림을 보고 ‘새로운 현상에 주목한’ 작품이라고 평했으며,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또 다른 위대한 영국의 풍경화가 존 컨스터블은 “그의 작품은 채색된 증기로 그린 듯이 일시적이고 공기처럼 가벼워 보인다.”라고 평했다. 〈해체를 위해 마지막 정박지로 끌려가는 ‘파이팅 테메레르 호’〉 역시 시대에 대한 고찰과 낭만이 어우러진 빼어난 작품이다. 테메레르 호는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 참전했던 전함으로, 해가 저물 무렵 과거의 군함이 최후의 여행을 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앞서 있는 증기선의 굴뚝에서 뿜어 나오는 수증기는 산업 사회의 상징인 동시에 대항해시대라는 영웅적이고 낭만적인 과거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터너는 유럽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스케치를 하고 돌아와 작품을 완성하곤 했으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체험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덕분인지 그의 작품들은 관객들을 극도로 몰입 시키며, 그것에서 느껴지는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1802년, 프랑스를 여행할 때 그는 칼레 시까지 횡단을 감행했고, 이때의 힘든 체험을 〈칼레 부두〉를 그리는 데 활용했다. 또한 그해 알프스를 넘은 체험은 후일 〈눈보라-알프스를 넘는 한니발의 군대〉를 그리는 데 모티프가 되었다. 〈칼레 부두〉 <칼레 부두〉 런던 내셔널 갤러리 그중에서도 가장 믿기지 않는 일화는 1842년 작품 〈눈보라-하버 만에 입항하는 증기선〉과 관련된 것이다. 증기선 한 척이 눈보라와 폭풍우에 요동치고 있는 장면으로, 소용돌이치는 듯한 색과 선이 현기증과 공포감,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을 느끼게 한다. 원래 소제목은 ‘얕은 바다에서 신호를 보내며 유도등에 따라 항구를 떠나가는 증기선. 나는 에어리얼 호가 하리치 항을 떠나던 밤의 폭풍우 속에 있었다’이다. 이 표현처럼 터너는 에어리얼 호가 폭풍우에 휘말릴 당시 그 안에 있었다고 하는데, 폭풍우를 관찰하고자 수부에게 부탁해 돛대에 묶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후기 그의 작품 경향을 대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1819년, 터너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는 것을 보았고, 이를 계기로 작품에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이때도 그는 역시 화산 폭발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 모두들 도망치는 가운데 화산 가까이까지 다가 갔다고 한다). 그는 자연에 대한 정확한 관찰을 토대로 그렸던 초기 작풍을 벗어던지고, 빛의 굴절에 따른 대기의 다양한 빛을 표현하고, 자연의 격렬함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 사실주의적 표현보다 자신의 체험과 그때의 심상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에 주력했다. 이후 그의 작품들은 대상의 형태가 점차 사라지고 대지와 공기, 수증기가 한데 어우러져 추상화처럼 변해 가기 시작했다. 때문에 〈비와 증기와 속도-그레이트 웨스턴 철도〉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것과 비슷한 그림’, 눈보라-하버 만에 입항하는 증기선〉은 ‘비누거품과 흰색 도료를 발라 놓은 것 같다’라는 악평을 들었다. 이에 터너는 자연 현상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에 반발하며 말했다. 이해받기 위해 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이러한 장면이 어땠는지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러나 화가이자 비평가인 존 러스킨은 “움직임, 안개, 빛이 이제껏 캔버스 위에 그려진 것 중 가장 장엄하게 표현되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터너는 화가로서의 성공,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었으나 일상생활은 다소 평안하지 않았다. 1800년에는 정신이상 증세가 심각해진 어머니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으며, 이후 갤러리 운영 보조로 일하며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그는 일평생 결혼하지 않고 비밀스럽게 자신의 갤러리와 화실에만 틀어박혔고, 사교적인 생활도 거의 하지 않았다. 1839년 교수직을 사임한 후에는 첼시에 작은 별장을 사서 ‘부스’라는 가명으로 은거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스케치 여행은 계속했으며, 죽기 직전까지 지칠 줄 모르고 그림만 그렸다고 한다. 작품에 대한 애착이 컸던 탓에 사후 작품이 흩어지는 것을 원치 않아 1851년 12월 19일 임종을 앞두고 “작품을 모두 한군데 같이 있게 해 달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품으로 남은 것 중 드로잉만 1만 9천 점에 이르렀다고 한다. Dutch Boats in a Gale 1801 /Oil on canvas, 163 x 221 cm/ National Gallery, London The Shipwreck 1805/ Oil on canvas, 171 x 240 cm/ Tate Gallery, London The Fall of an Avalanche in the Grisons 1810 / Oil on canvas, 90 x 120 cm/ Tate Gallery, London The Decline of the Carthaginian Empire 1817/ Oil on canvas, 170 x 239 cm/ Tate Gallery, London Quillebeuf, at the Mouth of Seine 1833 / Oil on canvas, 88 x 120 cm/ Museu Calouste Gulbenkian, Lisbon Frosty Morning 1813/ Oil on canvas, 114 x 175 cm/ Tate Gallery, London San Giorgio Maggiore at Dawn/ 1819
Watercolour, 224 x 287 mm/ Tate Gallery, London The Grand Canal, Venice 1835 / Oil on canvas, 91 x 122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Landscape with a River and a Bay in the Background 1835-40
Oil on canvas, 93 x 123 cm/ Musée du Louvre, Paris '빛의 화가 윌리엄 터너' [08/12] / YTN 웨더 영국 낭만주의 회화의 전성기를 열었고, 또 프랑스 인상주의의 문을 먼저 열어줬다는 평가를 받는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1839년 작품 [전함 테메레르]를 소개하려고 준비했습니다. 1775년 런던의 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난 터너는 영국 미술을 유럽 본토와 견줘도 손색없을 만한 수준으로 올려놓은 영국의 국민화가 [영화 속 명화]_007 스카이폴 속 숨은 그림 찾기/윌리엄 터너 . 영화 007 스카이폴 속 숨은 명화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1839)' 에 대한 간단한 소개 및 채널 소개 영상입니다. 월리엄 터너 _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 영상해설사 홍옥희가 전하는 명화 속 숨은이야기 그림 읽어주는 여자 160321 월리엄 터너 _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 William Turner: A collection of 1530 paintings (HD) Description: " Turner was born in Maiden Lane, Covent Garden, London, England. His father, William Gay Turner (27 January 1738 – 7 August 1829), was a barber and wig maker. His mother, Mary Marshall, became increasingly mentally unstable, perhaps, in part, due to the early death of Turner's younger sister, Helen Turner, in 1786. She died in 1804, after having been committed to a mental asylum in 1799. Possibly due to the load placed on the family by these problems, the young Turner was sent to stay with his uncle on his mother's side in Brentford in 1785, which was then a small town west of London on the banks of the River Thames. It was here that he first expressed an interest in painting. A year later he went to school in Margate on the north-east Kent coast. By this time he had created many drawings, which his father exhibited in his shop window. He entered the Royal Academy of Art schools in 1789, when he was only 14 years old, and was accepted into the academy a year later. Sir Joshua Reynolds, president of the Royal Academy at the time, chaired the panel that admitted him. At first Turner showed a keen interest in architecture but was advised to keep to painting by the architect Thomas Hardwick (junior). A watercolour of Turner's was accepted for the Summer Exhibition of 1790 after only one year's study. He exhibited his first oil painting in 1796, Fishermen at Sea, and thereafter exhibited at the academy nearly every year for the rest of his life. Although renowned for his oils, Turner is also one of the greatest masters of British watercolour landscape painting. He is commonly known as "the painter of light". one of his most famous oil paintings is The fighting Temeraire t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 painted in 1838, which hangs in the National Gallery, London. Turner travelled widely in Europe, starting with France and Switzerland in 1802 and studying in the Louvre in Paris in the same year. He also made many visits to Venice. on a visit to Lyme Regis, in Dorset, England, he painted a stormy scene (now in the Cincinnati Art Museum). Important support for his works also came from Walter Ramsden Fawkes, of Farnley Hall, near Otley in Yorkshire, who became a close friend of the artist. Turner first visited Otley in 1797, aged 22, when commissioned to paint watercolours of the area. He was so attracted to Otley and the surrounding area that he returned time and time again. The stormy backdrop of Hannibal Crossing The Alps is reputed to have been inspired by a storm over Otley's Chevin while Turner was staying at Farnley Hall. Turner was also a frequent guest of George O'Brien Wyndham, 3rd Earl of Egremont at Petworth House in West Sussex and painted scenes from the grounds of the house and of the Sussex countryside, including a view of the Chichester Canal that Egremont funded. Petworth House still displays a number of paintings. As he grew older, Turner became more eccentric. He had few close friends except for his father, who lived with him for thirty years, eventually working as his studio assistant. His father's death in 1829 had a profound effect on him, and thereafter he was subject to bouts of depression. He never married, although he had two daughters by Sarah Danby, one born in 1801, the other in 1811. He died in the house of his mistress Sophia Caroline Booth in Cheyne Walk, Chelsea on 19 December 1851. He is said to have uttered the last words "The sun is God" before expiring. At his request he was buried in St Paul's Cathedral, where he lies next to Sir Joshua Reynolds. His last exhibition at the Royal Academy was in 1850. The architect Philip Hardwick (1792–1870) who was a friend of Turner's and also the son of the artist's tutor, Thomas Hardwick, was one in charge of his funeral arrangements and wrote to those who knew Turner to tell them at the time of his death that "I must inform you, we have lost him". Music: Almost in F - Tranquillity by Kevin MacLe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