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딜리아니를 찾아서

2014. 7. 18. 03:43카테고리 없음


                      With Love and Care
Cosmos in September 삶이란 만져지지 않는 아픔이 목까지 차 올라도 한 송이 한송이 꽃을 피우면서 모딜리아니의 긴 목으로 서 있는 코스모스가 또 다른 모딜리아니의 긴 목으로 서 있는 나를 향하고 있네 우리는 한 형제가 아니었을까 만져지지 않는 아픔이 목까지 차 올라도 계절이 다 할 때까지 함께 기다려야 하는 우리는. 우리는... 삶, 항상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지만 따뜻함으로 보듬어 안고 함께 가야 하는 우리는. 우리는... 코스모스 / 이청리 Cypress Trees and Houses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 1918 캔버스에 유채 55 x 38cm 어깨를 드러낸 잔 에뷔테른 1919 캔버스에 유채 레오폴트 즈보로프스키 1918 캔버스에 유채 즈보로프스카 부인의 초상 1918 캔버스에 유채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914년 16세의 잔 에뷔테른과 만났을 무렵의 모딜리아니 Modigliani, Amedeo 1884~1920 고독한 영혼의 화가 노오란 스웨터의 잔느 Portrait of Jeanne Hebuterne in Yellow Sweater 1919 쟌느 에뷔테른의 초상 Jeanne Hebuterne on a red armchair 검은 넥타이를 맨 여인의 초상 Jeanne Hebuterne in a Large Hat 1918 Portrait of Mario Varvogli 1919 - 20 Seated Woman with Child aka Motherhood 1919 The Boy, 1918 Cypress Trees and Houses Femme Assise Devant Lit Young woman seated by the bed Jeanne Hébuterne in Red Shawl Jeanne Hbuterne Seated in profile 1918 Jeanne Hbuterne, Left Arm Behind her Head 1919 The Pretty Housewife 1915 Young Redhead in an Evening Dress 1918  Weiblicher Akt Grand Nude, 1917 oil on canvas Sitzender weiblicher Akt Nud culcat, 1917 화실 an Atelier (1912) Nude Caryatid 1913 앉아 있는 누드 1917 안트워프 왕립 미술관 Portrait of a Girl. 1917-18 Oil on canvas 46 x 29 cm 붉은머리의 잔 에뷔테른 1918 캔버스에 유채 Nude Looking over Her Right Shoulder 1917.Oil on canvas 89 x 146 cm Woman with Read Hair 1917. Oil on canvas 92.1 x 60.7 cm Portrait of the Artist's Wife- Jeanne Hebuterne 1918 The Young Apprentice 1918. oil on canvas 100 x 65 cm La Belle Epicière 1918 Oil on canvas 100 x 65 cm The Little Peasant 1918. Oil on canvas 100 x 65 cm A Blond Woman (Portrait of Germaine Survage) 1918. Oil on canvas Standing Nude - Elvira 1918 Oil on canvas 92 x 60 cm Portrait of Jaques and Berthe Lipchitz 모딜리아니 Modigliani
유대계 명문의 아들로 태어나, 피렌체와 베네치아의 미술학교에 다닌 뒤,
1906년 이후는 파리에서 살았다. 1908년 처음으로 앙데팡당전에 출품하였고,
다음해, 조각자 카마이노의 작품에 감명을 받았고 1909년 브랑쿠시의 권유로
조각제작을 시도하여, 니그로조각과 브랑수시식의 사실을 떠난
간결한 조형양식을 흡수 발전시킨 독자적 조각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장티푸스 폐렴등 안아파본 병이 없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못해서
1913년부턴 회화에만 전념을 하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늘 조각하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고 한다. 어쨋건 모딜리아니는 초기회화에서
세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07년 있었던 세잔의 회고전에서 본 세잔의
표현주의는 그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주로 초상화만을
그렸고 보통 주위의 이웃이나 지인, 창녀들을 모델로 그렸다
1910년 <<첼로를 켜는 사람>>등 6점의 유화를 앙데팡당전에 출품하였으며,
1913년 퐁마르나스로 옮겨 키슬링,수틴등과 사귀었다. 에콜 드 파리의
뛰어난 작가로서 제1차 세계대전중에 많은 걸작을 남겼는데,
탁월한 데생력을 반영하는 리드미컬하고 힘찬 선의 구성,
미묘한 색조와 중후한 마티에르 등이 특색이다
1917년, 베르트 배유화랑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다. 초기에는 풍경화도
몇 점 그렸으나, 파리로 온 후부터는 초상화와 누드화가 대부분이다
특히 긴 목을 가진 단순화된 형태의 여인상은 독특하여,
무한한 애수와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품고있으며,
보티첼리나 베네치아파의 작풍과도 이어지는 섬세하고 우아한 이탈리아적
개성을 보여준다. 시인적 자질이 풍부한 다감한 미남자로 일화가 많으며,
만년에 잔느 에뷔테른과의 사이에 딸을 두었다. 생전에는
폴 기욤, 즈보로브스키 등 일부 화상이 원조했을 뿐,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가난 속에 과음과 방랑을 일삼다가
1920년초 파리의 자선병원에서 짧은 일생을 마쳤다.
  
1884년 7월 12일 이탈리아 오스카나지방의 리오르노에서 출생
1895년 리오르노 중학교 입학. 늑막염을 앓다
1898년 풍경화가 미케리에게 데생과 유화를 배움. 장질환으로 폐렴에 걸림
1901년 폐결핵에 걸림 (-.-;) 요양을 위해 나폴리, 로마등지를 여행
여행중 접하게된 카마이노의 조각에서 감명을 받음
1902년 피렌체 미술학교에 입학, 조각가의 길을 걷는다
1903년 베네치아 미술학교 입학. 살롱 도똔느 창립
1907년 세잔느의 회고전을 보고 감명을 받다
1914년 영국 여류시인 베아트리스 헤스팅그스와 만남. 3년간 동거

< Portrait de Max Jacob>
1917년 잔느 에뷔테른과만남. 첫개인전에서 나체화 5점이 철거
1919년 현존하는 그의 유일한 <자화상> 그림
1920년 1월 24일 자선병원에서 사망 

Ja Vais Seul Sur Ia Route/Anna German 200 Tracks

노오란 스웨터의 잔느
   Portrait of Jeanne Hebuterne

모딜리아니가 그린 아내의 초상가운데 나는 이 그림을 제일 좋아한다.
어쩐지 슬퍼보이기도 하고 애련하고 우수에 젖은 모습이기도 하다.
아내는 이 그림에 대해서 별 감동없이 그냥 지나쳐 버릴수도 있었겠지만
목이 길고 얼굴이 갸름한데다 몸 전체에서 베어나오는 분위기에서
꼭 당신 모습을 떠올린다는 말에 그건 화가의 눈으로 그린 그림이라면서
고흐나 고갱, 모네와 세잔느라면 몰라도 더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다.
영화 모딜리아니는 나도 아내도 그 당시엔 볼수 없었을 때이니까
그들의 비극적인 삶과 사랑과 죽음을 알았더라면 무어라고 얘기했을까?
여느 천재화가나 마찬가지로 모딜리아니의 화풍에는 그 독특함이
한눈에 드러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아내를 그릴 때 마다 나는 이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보곤 한다.
눈을  뜨나 감았을 때나 그 모습은 여전하다. 변하지 않는다.
모딜리아니의 사랑은 아내 쟌느의 초상에서
영원한 빛으로 남는다.


Porträt der Jeanne Hébuterne - 붉은색의 가구를 배경으로 붉은의자에
  걸쳐있는 붉은 내의를 입은 긴 팔과 오른쪽 벽면은 무채색으로
    검은 스웨터를 입은 상체와, 붉은스컷 차림으로 앉아있는 하체의
      배경을 이룬다, 가구와 반대편으로 드러낸 곡선의 어깨와 약간
        기우린 긴 목과 푸른눈의 긴 얼굴 그리고 위로 올려 땋은 붉은머리
          전체 구도를 반 반으로 구분하여 절묘하게 배치하였다. 그래서
            의자에 곧게 앉아있는 여인의 모습이 매우 단아해 보인다.

        
Porträt der Jeanne Hébuterne - 붉은 팔걸이 안락의자에 벗은 왼팔을 겨드랑이가
완전히 밀착될 정도로 깊게 기대고 손을 얼굴 가까이, 긴 손가락 하나가 왼쪽뺨을
얼굴을 오른쪽으로 약간 기우린채, 생각에 잠긴듯한 -
사색하는 모습 그대로이다. 옷차림엔 신경을 쓰지않은 듯 가벼운 흰색의 내의차림
드러낸 둥근 어깨와 긴 오른쪽 팔은 무릅까지 닿아있다. 역시, 긴 목과 얼굴은
팔걸이에서 오른 쪽으로 기우려, 두가지 채색의 벽의 경계를 보여준다.
의자와 무릅위의 상체가 캔버스의 한가운데 위치하여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둥근 어깨, 긴 목과 긴 얼굴,. 그윽한 눈매, 우수에 젖은 표정의 여인.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여인은 바로 천국에서도 모델이 되어주겠다던
모딜리아니의 영원한 반려자, 잔느 에뷔테른과 모딜리아니의 만남,..
잔느가 사랑한 모딜리아니와 그의 작품세계,
죽음도 갈라 놓을 수 없었던 그들의 행복하고도 슬픈 사랑이야기를
열정, 천재를 그리다 -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展
이 있었답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Amedeo Modigliani. 1884~1920

이탈리아 리보르노에서 태어난 화가. 14세부터 미술학교를 다니며 그림공부를 했고
22세때 파리로 와 몽마르트에서 생활했다. 거기서 피카소, 위트릴로 등의 젊은 화가들과
교류했고 한때는 조각가 브랑쿠시에게 조각을 배우기도 했으며 단테, 로트레아몽, 랭보
등의 시를 즐겨 읽었다. 그는 곧 몽마르트의 유명인이 되었다.

모딜리아니는 추상에 몰두하는 브랑쿠시에 공감하며 자신의 작품 또한 단순화 시킨다.
주로 자신의 주변 사람을 모델로 하여 인체의 비율을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구축해
나간다. 한때 조각에 몰두하였으나 건강상 단념하고 신비롭고 갸름한 얼굴 형태와
고전적 색채로 자신의 확고한 화풍을 천착해 가던 중 19살 소녀 잔느 에뷔테른을 만난다.
이들은 곧 사랑에 빠졌지만 그는 당시 마약과 술에 취해 피폐해져 있었다. 그러나 잔느는
변함없는 사랑으로 그에게 헌신했다. 그러던 중 두 사람 사이의 딸이 태어나면서
심기일전한 모딜리아니는 작품에 몰두하는데 갑자기 고열로 쓰러진다. 잔느는 급히
의사를 불렀으나 며칠 후 숨을 거둔다. 사인은 결핵성 뇌막염...잔느는 모딜리아니가
죽은 이틀후 5층 건물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다. 잔느는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한 몸이었다.

 

  



Porträt der Jeanne Hébuterne  

 

외롭고 고단했던 파리의 보헤미안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Amedeo Modigliani 1884-1920)

 

두상 (1912)

모딜리아니는 조각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건강을 이유로 조각에 까지 여유를 부릴 수 없었던 그는
유명한 조각가 브랑쿠시와의 교류를 통해 어느정도 대리 만족을 할 수 밖에 없었죠.
이 작품에서도 침착하고도 우아한 브랑쿠시 스타일과 모딜리아니 특유의 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피카소의 초상 (1915)

모딜리아니 특유의 양식이 보여지지는 않지만 이 그림을 보면
그의 피카소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눈동자를 잘 그리지 않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피카소의 눈은 짙은 눈동자가 끼워져 있습니다.
피카소는 우리보다 언제나 2년이 앞선다며 그의 천재성을 숭배하였던 모딜리아니는
파리시절 초기 가난하고 괴팍한 그를 만나
훗날까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 몇 안되는 친구였습니다.
(피카소는 그의 그림을 그리 인정해 주진 않았다고 하네요.)

큰 모자를 쓴 쟌느 에뷔테른느 (1917)

잔느를 만난 지 얼마 안되어 사랑에 빠진 그가 그린, 연인에 대한 애정이 충만한 작품입니다.
당시 잔느는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는 학생이었고, 화장조차 하지 않는 순수하고 청순한
소녀였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방황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며,
죽은 남편을 뒤따라 자살함으로 자신의 사랑을 보여준 강한 여인이었습니다.

푸른 옷의 소녀 (1918)

유난히 어린아이를 좋아하던 모딜리아니는 많은 아이들의 초상화를 남겼습니다.
이 작품은 아직 잔느가 아이를 출산하기 전에 그린 것으로 곧 태어날
자신들의 딸에 대한 소망을 담아 그린 것 같습니다. 여느 아이와 같지 않게
차분하게 가라앉은 소녀에게서 조용하고 순종적인 부인 잔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남 프랑스의 풍경 (1919)

평생 4점밖에 풍경화를 그리지 않았던 모딜리아니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던 그의 눈에 하늘과 나무가 들어오기 시작한 건
그가 악화된 건강 때문에 시작한 남프랑스 여행에서 였습니다.
세잔 스타일의 간소한 그의 풍경화에서 인간이 아닌 자연을 보며 느끼던
작가의 감흥을 동일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가 진작에 인간이 아닌 풍경에 눈을 돌렸다면
그의 정신세계가 좀더 윤택해졌을지도 모르겠죠?

어린애를 안고 있는 여자 (1919)

집시를 주인공으로 그린 이 작품을 보면 영원한 보헤미안이 되고 싶어하는
모딜리아니의 바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림 속 주인공의 슬픈 눈을 보면서 모딜리아니는 동질감이라도 느꼈을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는 녹색 안에 사람을 긴장시키는 듯한 붉은 색
칼라가 재미있습니다.

자화상(1919)

“ 죽음의 미소를 띤 부드러움은 영원 속에서 파스칼이나 나폴레옹의 그것과 흡사하다. ”
라며 모딜리아니의 모습을 극찬한 철학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잔느의 보살핌 속에서 그린 그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병 때문에 파리해진 얼굴이지만
여전히 귀족적인 면모를 볼 수 있으며 그림을 그리는 그의 자세와 표정이 평화롭고
안정되어 보입니다.

노랑 스웨터의 쟌느 (1919)

잔느가 첫번째 딸 잔느(그는 딸에게 어머니의 이름을 물려주었다.)를 임신하고 있을 때
그린 것입니다. 엄격한 카톨릭 집안에서 자란 그녀가 가난한 유태인 화가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통을 뒤로 하고, 작품 속 그녀의 마음은
사랑으로 충만해 보입니다. 이 때가 그들에게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일 것입니다.

에뷔테른느 부인의 초상 (1919)

그가 그린 많은 잔느의 초상화 가운데 하나지만 너무나 유명한 작품입니다.
백색과 청색의 과감하고도 가벼운 대비가 그의 마음이 잔느로 인하여 한층 밝아졌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소 어른스럽기도 한 작품 속 잔느의 모습에서 많은 어려움을
이겨낸 그녀의 성숙함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Jeanne Hebuterne Fauteuil Rouge / on a red armchair
Femme Assise Devant Lit / Young woman seated by the bed
Femme Cravate Noire / Woman with a black tie
Femme Chapeau Noir / Woman with a black hat
Madame Zborowska sur un Sofa / on a sofa
http://www.artnet.com/artist/11928/amedeo-modigliani.html
http://www.thecityreview.com/f04simp1.html  


모딜리아니를 찾아서 리처드 2009-10-22 10935
( Compiled by Richa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