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이중섭 ♤
2014. 8. 7. 16:56ㆍ카테고리 없음
리처드 2008.09.28 20:43:35 | 조회 : 8878
연꽃아래 해엄치는 여자
바닷가(2)
야수를 탄 여자
그림엽서
활을 쏘는 사람들
마사꼬에게 보낸 그림엽서
그리운 제주도 풍경 * 종이에 잉크, 35×24.5cm
서귀포 섶섬과 범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서귀포 섶섬과 범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돌아오지 않는 강 * 종이에 연필과 유채,
20.2×16.4cm 1956년
20.2×16.4cm 1956년
1940. 환상적인 바다
토끼풀(1) 1941
토끼풀(2) 1942
토끼풀이 있는 바닷가 1941
달과 까마귀 29 x 41.5cm, 1954년
보름달이 뜬 맑고 푸르른 하늘
세가닥으로 그어진 전깃줄에 앉아 친구 찾아 모여드는 까마귀
달과 까마귀 29 x 41.5cm, 1954년
보름달이 뜬 맑고 푸르른 하늘
세가닥으로 그어진 전깃줄에 앉아 친구 찾아 모여드는 까마귀
세 사람 * 18.2×28cm * 종이에 연필 * 1942∼5년
구상네 가족 * 종이에 연필과 유채 32×49.5cm, 1955년
바닷가의 아이들 1951 (은박지에 그린 그림
길떠나는 가족
흰 소 * 종이에 유채 * 34.5×53.5cm * 1953년 무렵 *
용인 호암 미술관 소장
용인 호암 미술관 소장
황소 32.3 x 49.5cm, 1953년 무렵
" 화가 이중섭, 그 빛나는 사념, 열정과 비애"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함이 없는 그 빛,
비 오고 바람 불어도, 그 기상 변치 않으니,
소나무야 소나무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가 즐겨 불렀던 이 노래에는 고단했던 그의 삶이 베어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내었고 도쿄 유학시절
서양의 근대미술을 접했다. 그곳에서 그는 한 여인을 사랑하였고
두 아이를 낳았다. 해방후 조선에서 민족의 비극 625 전란을 맞았고
피난시절 부산과 서귀포를 전전하면서 가난과 병고 속에서
작품을 남겼다. 그는 짧은 생애 대부분을 일본에 남겨둔 가족을
그리워하면서 살았다. 그의 천재성은 한국의 피카소라 일컬지만
그의 삶은 빛의 화가 고흐나 조선시대 화가 호생관 최북을 방불케 한다.
원시와 자연, 그는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었고 그에게는 옷이 필요없었다.
하여 삶의 대부분을 그는 그림 그 자체로 옷을 벗고 살았다.
시대의 아픔을 고아처럼 고스란히 안고 살았던 그는
지금 세상에 없지만 많지않은 그의 작품은 우리 삶의 심연에
길이 살아 불꽃이 되어, 우리의 피와 살과 정신을 태운다.
O Tannenbaum
O Tannenbaum, o Tannenbaum,
Wie treu sind deine Blätter!
Du grünst nicht nur zur Sommerzeit,
Nein, auch im Winter, wenn es schneit.
O Tannenbaum, o Tannenbaum,
Wie treu sind deine Blätter!
O Tannenbaum, o Tannenbaum,
Du kannst mir sehr gefallen!
Wie oft hat schon zur Winterzeit
Ein Baum von dir mich hoch erfreut!
O Tannenbaum, o Tannenbaum,
Du kannst mir sehr gefallen!
O Tannenbaum, o Tannenbaum,
Dein Kleid will mich was lehren:
Die Hoffnung und Beständigkeit
Gibt Mut und Kraft zu jeder Zeit!
O Tannenbaum, o Tannenbaum,
Dein Kleid will mich was lehren!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빛
쓸쓸한 가을날이나
눈보라치는 날에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네빛
소나무야 소나무야
너희는 우리 동무
갑갑한 일이 있어도
어려운 일이 있어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씩씩한 우리 동무
"treu" (trustworthy)
"grün" (green).
" 화가 이중섭, 그 빛나는 사념, 열정과 비애"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함이 없는 그 빛,
비 오고 바람 불어도, 그 기상 변치 않으니,
소나무야 소나무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
그가 즐겨 불렀던 이 노래에는 고단했던 그의 삶이 베어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내었고 도쿄 유학시절
서양의 근대미술을 접했다. 그곳에서 그는 한 여인을 사랑하였고
두 아이를 낳았다. 해방후 조선에서 민족의 비극 625 전란을 맞았고
피난시절 부산과 서귀포를 전전하면서 가난과 병고 속에서
작품을 남겼다. 그는 짧은 생애 대부분을 일본에 남겨둔 가족을
그리워하면서 살았다. 그의 천재성은 한국의 피카소라 일컬지만
그의 삶은 빛의 화가 고흐나 조선시대 화가 호생관 최북을 방불케 한다.
원시와 자연, 그는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었고 그에게는 옷이 필요없었다.
하여 삶의 대부분을 그는 그림 그 자체로 옷을 벗고 살았다.
시대의 아픔을 고아처럼 고스란히 안고 살았던 그는
지금 세상에 없지만 많지않은 그의 작품은 우리 삶의 심연에
길이 살아 불꽃이 되어, 우리의 피와 살과 정신을 태운다.
O Tannenbaum
O Tannenbaum, o Tannenbaum,
Wie treu sind deine Blätter!
Du grünst nicht nur zur Sommerzeit,
Nein, auch im Winter, wenn es schneit.
O Tannenbaum, o Tannenbaum,
Wie treu sind deine Blätter!
O Tannenbaum, o Tannenbaum,
Du kannst mir sehr gefallen!
Wie oft hat schon zur Winterzeit
Ein Baum von dir mich hoch erfreut!
O Tannenbaum, o Tannenbaum,
Du kannst mir sehr gefallen!
O Tannenbaum, o Tannenbaum,
Dein Kleid will mich was lehren:
Die Hoffnung und Beständigkeit
Gibt Mut und Kraft zu jeder Zeit!
O Tannenbaum, o Tannenbaum,
Dein Kleid will mich was lehren!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빛
쓸쓸한 가을날이나
눈보라치는 날에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네빛
소나무야 소나무야
너희는 우리 동무
갑갑한 일이 있어도
어려운 일이 있어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씩씩한 우리 동무
"treu" (trustworthy)
"grün" (green).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
*
화가 이중섭 (12) 2008.05.31 19:14:19 | 조회 : 251
함께 와 주신분
최리사
한국의 피카소라 하는 화가 이중섭의 그림과
그에 대한 이야기 올려 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어 내려오는 동안
한 예술가의 인생살이가 고달프면서도
극히 인간적인 면에서 나의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좋은 글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리처드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늘 건안하시기 바랍니다. 2008.06.03 (08:19:07)
정난영
아고리군과 발가락군 남덕 아내 이야기 전에 감명깊게 읽었는데
여기서 다시보니 또 반갑군요.
연전에 타계하신 시인 구상님을 다시 생각하니 애닯고
이제는 중심이 거의 외곽인듯이 한산해진 광복동 남포동 거리
전후의 밀다원 차집 이름이 아련한 향수를 돋웁니다.
리사님 진품은 아니지만 이중섭님의 텃치로 그려진
찻 잔 받침을 제 생각하며 애용하시고 계시겠지요?
리차드님 긴 글 상재하신다고 수고하셨습니다.
2008.06.03 (13:52:48)
최리사
정난영님,
님의 선물이 소중하고,
더구나 이중섭님의 그림이라
사진으로 찍어 놓기까지 했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국의 피카소라고 소개를 합니다.
2008.06.05 (14:36:23)
청정제주사랑
황소그림 이중섭화가-이중섭거리
이 거리를 걸어보네
이중섭의 거리를
아내와 두 아들과
꿈을 그리며 살던
초가집 작은 방에는
빛바랜 사진 한 장
그대 숨결로 남아있고,
나는 철썩철썩
파도소리 들으며
그때 그 길을 걸어 보았네
삶이란 언제나
쓸쓸하고 고독하고 스산한 것
멀리
바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아득히 멀어저간
그리운 얼굴들
오늘도
그대는 띄워 보낼까
애타는 마음을 저 구름속으로
*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이중섭 거리 51년도에 아내와 두아들과 피난와
1년 동안 피난 생활을 했던 생가인 초가가 그대로 남아 있고..그 뒤쪽으로는
그의 작품들을 전시해놓은 이중섭 전시관이 마련돼 있습니다.. 이 일대를
서귀포시는 이중섭 거리로 지정해서..매년 기념 행사도 이루어 지고 있답니다 ㅎㅎ
그 유명한 "황소" 완성시킨 장소이기도 하니.. 제주에 오셔서 관광지를 관람하는
것도 좋지만..이런 문화적 유적지를 관람해봄도 좋을 듯 싶네요^^
2008.06.10 (10:12:55)
♤♤ 이중섭 은지화 모음 ( 1952s ) ♤♤
*
화가 이중섭 (12) 2008.05.31 19:14:19 | 조회 : 251
함께 와 주신분
최리사
한국의 피카소라 하는 화가 이중섭의 그림과
그에 대한 이야기 올려 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어 내려오는 동안
한 예술가의 인생살이가 고달프면서도
극히 인간적인 면에서 나의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좋은 글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리처드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늘 건안하시기 바랍니다. 2008.06.03 (08:19:07)
정난영
아고리군과 발가락군 남덕 아내 이야기 전에 감명깊게 읽었는데
여기서 다시보니 또 반갑군요.
연전에 타계하신 시인 구상님을 다시 생각하니 애닯고
이제는 중심이 거의 외곽인듯이 한산해진 광복동 남포동 거리
전후의 밀다원 차집 이름이 아련한 향수를 돋웁니다.
리사님 진품은 아니지만 이중섭님의 텃치로 그려진
찻 잔 받침을 제 생각하며 애용하시고 계시겠지요?
리차드님 긴 글 상재하신다고 수고하셨습니다.
2008.06.03 (13:52:48)
최리사
정난영님,
님의 선물이 소중하고,
더구나 이중섭님의 그림이라
사진으로 찍어 놓기까지 했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국의 피카소라고 소개를 합니다.
2008.06.05 (14:36:23)
청정제주사랑
황소그림 이중섭화가-이중섭거리
이 거리를 걸어보네
이중섭의 거리를
아내와 두 아들과
꿈을 그리며 살던
초가집 작은 방에는
빛바랜 사진 한 장
그대 숨결로 남아있고,
나는 철썩철썩
파도소리 들으며
그때 그 길을 걸어 보았네
삶이란 언제나
쓸쓸하고 고독하고 스산한 것
멀리
바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아득히 멀어저간
그리운 얼굴들
오늘도
그대는 띄워 보낼까
애타는 마음을 저 구름속으로
*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이중섭 거리 51년도에 아내와 두아들과 피난와
1년 동안 피난 생활을 했던 생가인 초가가 그대로 남아 있고..그 뒤쪽으로는
그의 작품들을 전시해놓은 이중섭 전시관이 마련돼 있습니다.. 이 일대를
서귀포시는 이중섭 거리로 지정해서..매년 기념 행사도 이루어 지고 있답니다 ㅎㅎ
그 유명한 "황소" 완성시킨 장소이기도 하니.. 제주에 오셔서 관광지를 관람하는
것도 좋지만..이런 문화적 유적지를 관람해봄도 좋을 듯 싶네요^^
2008.06.10 (10:12:55)
♤♤ 이중섭 은지화 모음 ( 1952s ) ♤♤
1
2
3
4
은지화(두 아이)> 연도미상 _ 종이 위에 은지에 새김, 유채, 8.5 x 15cm
낙원의 가족 Family in the Paradis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복숭아밭에서 노는 아이들 Children Playing in the Peach Farn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복숭아밭에서 노는 아이들 Children Playing in the Peach Farn
신문을 보는 사람들 Pepple Reading the Newspaper 1950년대 은박지에 유채 8.3 x 15.4cm 미국 뉴욕 모던 아트 뮤지엄 소장 |
내가 만난 이중섭(李仲燮)
김춘수
광복동(光復洞)에서 만난 이중섭(李仲燮)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南浦洞)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李仲燮)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 남천(南天), 근역서재, 1977> 2008.06.10 (16:42:23)
이중섭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해 보세요..
1916. 4. 10 평남 평원~1956. 9. 6 서울.
이중섭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의 한 사람이다.
호는 대향(大鄕).
[생애]
부유한 농가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8세 때 평양 이문리에 있던 외가에 머무르며 종로공립보통학교를 다녔다. 졸업 후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에 입학해 임용련으로부터 미술지도를 받았다. 임용련은 예일대학교 미술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로 학생들에게 향토적인 주제에 의한 미의식을 가르쳤고 이는 이중섭의 화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중섭은 18세에 학교건물을 새로 짓자는 이유로 오산학교 본관 화학실을 불태우기도 했으며 일제의 국어말살정책에 반발해 한글자모로 구성을 시도했다. 이무렵 그는 들에 있는 소를 관찰하며 스케치에 열중했고 오산학교를 졸업할 때는 앨범의 서명란에 한반도를 그리고 현해탄에서 불덩이가 날아드는 그림을 그려 소동을 빚기도 했다.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제국 미술학교에 들어갔다가 문화학원에 재입학해 20세기 모더니즘 미술의 자유로운 경향을 공부했다. 이때 이정규·김환기·유영국·김병기·문학수 등과 사귀었다. 1938년부터 일본 추상 그룹인 미술창작가협회에 참여했으며 1941년에는 협회상인 태양상(원명 조선예술상)을 받았다. 그해 김환기·유영국·문학수 등과 서울에서 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창립전을 가졌다. 프랑스 유학을 원했으나 형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다. 1943년 귀국하여 2년 후 문화학원 후배인 야마모토[山本方子]와 결혼하여 원산에 정착해 살면서 8·15해방을 맞았다. 1946년 북조선미술동맹에 가입하여 구상(具常)의 시집 〈응향 凝香〉 표지그림을 그린 후 구상의 사건에 연루되어 고통을 받기도 했다. 그뒤 불우아동들의 무료강습소에서 그림을 가르쳤다. 1950년 겨울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부산·서귀포·통영 등지로 전전하며 피난살이를 했다.
1952년 국제연합(UN)군 부대 부두노동을 하며 양담배갑을 모아 은지화를 제작했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부인은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났고 이듬해 부인을 만나러 일본에 1차례 건너갔다온 것을 제외하고는 만나지 못했다. 궁핍과 고독의 나날을 보내면서 종군화가로서 몇 차례 단체전에 출품했고 1953년에는 통영에서 유강렬과 함께 지내며 다방에서 40점의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이듬해 진주를 거쳐 상경했고 박생광의 초대로 진주로 내려가 작품 활동을 했다. 서울 누상동에 거주하면서 국방부·대한미술협회(대한미협) 공동주최의 대한미협전에 출품했다. 1955년에는 미도파 화랑과 대구의 미국공보원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그해 7월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나 대구의 성가병원에 입원했다. 친구들의 배려로 여러 병원으로 옮겨다니며 치료해 얼마간 호전되었으나 무단으로 퇴원한 후 불규칙한 생활로 병세가 악화되어 적십자병원에서 죽었다.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고 1957년 조각가 차근호 제작으로 묘비가 세워졌다.
[작품세계]
이중섭은 자유로운 기질의 소유자로 예민한 감수성과 순진무구함, 외곬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성격은 일본 유학시 보수적인 관학풍의 경향보다는 오히려 서구 아방가르드 회화에 깊이 빠지게 했다. 감정이 실린 격렬한 필치와 강렬한 색감, 날카로운 선묘로 이루어진 독특한 조형세계는 그가 야수파 화풍에 얼마나 심취했는지를 알려준다. 그러나 그의 문제의식과 재능은 단순히 서양어법을 모방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그를 키워준 향토의 숨결과 희망을 담게 했다. 초기 작품에서는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향토적인 주제의 그림을 주로 그렸으나 그뒤로는 피난시절 가족과의 생활,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 등 생활일기와 같은 그림을 주로 그렸다. 그의 예술세계는 철저하게 자신이 처한 삶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어려운 시대에 개인적 삶의 고뇌를 지극히 진솔하고 생생하게 표현해냄으로써 한 시대의 아픔을 극명하게 나타냈다. 동시에 서양미술의 어법을 완벽하게 소화·흡수하여 개성적인 조형을 성취함으로써 한국미술의 한 전형을 이루었다. 특히 원산에서 그린 현존하는 소묘를 비롯하여 가족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을 표현한 후기의 은지화는 자유자재한 선묘와 심도있는 정서적 표현력을 보인 탁월한 작품이다. 작품으로는 〈흰 소〉·〈투계〉·〈닭과 가족〉·〈아이들과 물고기와 게〉 등이 있다. 2008.06.10 (16:47:49)
문채원
3년이 지났지만 제 동생과 함께
리움 미술관에서 열린 이중섭전을 다녀왔었습니다.
끝이 너덜너덜한 담배 은박지에다 그린 그림이나
일본에 간 가족을 그리워하며 그린 그림을 보며
가슴 아파했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동생도 저도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그림 전시회 가서
그렇게 슬퍼지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이중섭의 사진을 바라보며
그의 고달프고 짧았던 생애를 아쉬워하고
긴 여운을 남기고 미술관을 나왔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도저히 이런 마음으론 그냥 갈 수 없다며
큰길가로 나와 2층에 있는 어느 음식점에 들어가
밤이 깊어질 때 까지 그림의 잔상을 이야기하던 일도
추억이 되었습니다.
몇 번이나 이 방을 방문하여 그림을 감상하고
올려주신 긴 글 읽으며 감사의 마음 가득했는데
쑥스러워 글도 남기지 못하다가 오늘은 용기 내어
흔적 남깁니다.
리처드님, 참 고맙습니다!! 2008.08.07 (00:32:19)
강자옥
문채원님.
님께서 다녀 가셨군요.
이번 최리사님 오시면 함께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 생가와 그 거리를
가려 합니다. 리사언니께서도 좋아 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천지연 폭포의 야경을 즐기며 데이트 하려 합니다.
채원님. 님께서도 오신다면 우리의 행복이 두배가 됩니다.
2008.08.09 (07:49:55)
Dans La Nuit - 쇼팽의 이별곡
Et quand dans la nuit tout s'endormit,
Je vis les cieux devant mes yeux fermés.
Dans le silence j'avais trouvé la vérité,
Comme une fleur qui ressemble à mon coeur.
L'air me semblait léger léger
Et les couleurs d'une infinie douceur,
Les yeux fermés.
Le coeur si pur
Qui voit revivre l'espoir,
Même s'il fait noir
Qu'il semble pleuvoir.
Et quand dans la nuit tout s'endormit,
Je vis les cieux devant mes yeux fermés.
Dans le silence.
Le coeur si pur
Qui voit revivre l'espoir,
Même s'il fait noir
Qu'il semble pleuvoir.
Et dans le noir
On peut voir l'espoi
한 깊은밤 꼭 감은 눈에 하늘이 열리고
마음속엔 한송이 꽃이 피어나네
그 고요함 속에서
하늘은 정녕 포근한 눈 빛으로
한 없이 부드러운 손길로
나를 감 싸고
가슴은 그렇게 맑아서
숨은듯 피어있는 희망을 본다
밤은 그렇게도 어둡게 흐려서
비라도 내릴것 같은데
모두 잠든 깊은밤
두 눈을 감으면 피어오르는 하늘
밤의 그 정밀함 속에서
가슴은 티 없이 맑아서
숨은듯 피어있는 희망을 본다.
밤은 그렇게도 어둡게 흐려서
비라도 내릴것 같은데
그 어둠속에서 피어있는
밝은 희망을 본다.
진영기
반가운 이름들이 가득...^^
하지만 그림엔 문외한인 불량감자...ㅠ.ㅠ
리처드님, 고맙습니다.
변치않는 존경과 사랑을 보내며...
2008.10.01 (23:23:56) 하지만 그림엔 문외한인 불량감자...ㅠ.ㅠ
리처드님, 고맙습니다.
변치않는 존경과 사랑을 보내며...
최리사
리처드님이 올려주신 '화가 이중섭'을 대하고
제주도에 가면 꼭 이중섭 거리를 거닐어 보리라 마음 먹었었지요.
순전히 생각 속의 일이었는 데
이중섭을, 한 인간이 이룩한 거룩하도록 지고한 사랑의 역사를
한 눈에 담고 돌아왔습니다.
꼭 한사람이 누울만한 자리의 방을 드려다 보며
그의 삶이 애절하게 끝난 것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짧은 일정에 제주도의 문화탐방을 할 수 있게 도와 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과의 끈끈한 행복의 시간은
고히 접어서 나빌레라.
2008.10.13 (09:58:46)제주도에 가면 꼭 이중섭 거리를 거닐어 보리라 마음 먹었었지요.
순전히 생각 속의 일이었는 데
이중섭을, 한 인간이 이룩한 거룩하도록 지고한 사랑의 역사를
한 눈에 담고 돌아왔습니다.
꼭 한사람이 누울만한 자리의 방을 드려다 보며
그의 삶이 애절하게 끝난 것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짧은 일정에 제주도의 문화탐방을 할 수 있게 도와 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과의 끈끈한 행복의 시간은
고히 접어서 나빌레라.
리처드
진영기님, 반갑습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
빨리 금성에서 온 가인과 랑데부를
해야 할 터
변함없는 감사과 사랑을 전합니다.^ ^
최리사님,
제주의 추억은 오랫동안 님의 감성가운데
자라는 나무이겠지요
그 푸르럼 항상 간직하시길...
PS.
화가 이중섭!
님은 천상에 있지만 그의 영혼은
그가 사랑했든 우리곁에 있습니다.
2009.01.22 (11:28:30)
이서종
엄청난 불운을 겪은 많은 천재 가운데
화가 이중섭이 우뚝 서있습니다.
고난 가운데도 그의 예술혼은 꺽이지
않았고 그리운 사람과 만나지 못하는
외로움 속에서도 그 사랑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그림은 그의 외로움
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해변에서 놀았던 제주도 서귀포의 추억
을 항상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L^
2009.09.19 (09:16:29)화가 이중섭이 우뚝 서있습니다.
고난 가운데도 그의 예술혼은 꺽이지
않았고 그리운 사람과 만나지 못하는
외로움 속에서도 그 사랑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그림은 그의 외로움
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해변에서 놀았던 제주도 서귀포의 추억
을 항상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L^
리처드
이서종님께
이중섭의 시
소의 말
이중섭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2012.12.07 (19:44:09)이중섭의 시
소의 말
이중섭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Isla Grant - A Single Yellow Rose'
When I awoke this morning imagine my surprise
on my pillow lay a single yellow rose
I smiled "what?" when I read
the card for the teardrops in my eyes
It was the only way that you could say goodbye
아침에 일어나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상상해 보세요!
제 베개위에 노랑 장미 한 송이가 놓여 있더군요
"뭘까?" 하고 미소 짖고 카드를 읽고 내 두 눈에
눈물이 가득히... 그것이 당신이 내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이었었군요
You couldn't tell me to my face that
you have found another
And did never cross my mind you'd be untrue
So today 'cause I lay sleeping you left me here alone
And you said goodbye with a single yellow rose
당신은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다른 사람을 찾았노라고
말할 수 없었지요. 당신 마음이 거짓일 것이라고
당신이 내 마음을 거역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오늘
내가 잠든사이 나 혼자 두고 당신은 떠나갔어요.
그리고는 노랑장미 한 송이로 당신은
작별인사를 하셨군요
Did you know that yellow roses mean
you love someone forever?
And did you know they say forever I'll be true?
Why did you have to go straight to leave
and throw our love away?
Why did you leave a single yellow rose?
노랑 장미가 누구를 영원히 사랑한다는 뜻이라는 것
당신 아시나요? 사람들이 내가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고 말들 하는 것을 당신은 아시나요?
왜 당신은 우리들의 사랑을 내 던져 버리고
곧장 떠나 버려야 했나요? 왜 당신은 외로운
노랑장미 한 송이를 남겨 놓으셨나요?
You couldn't tell me to my face that
you have found another
And did never cross my mind you'd be untrue
So today 'cause I lay sleeping you left me here alone
And(yes) you said goodbye with a single yellow rose
당신은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다른 사람을
찾았노라고 말할 수 없었지요. 당신 마음이
거짓일 것이라고 당신이 내 마음을 거역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오늘 내가 잠든사이 나 혼자 두고 당신은
떠나갔어요. 그리고는 (네) 노랑장미 한 송이로
당신은 작별인사를 하셨군요
yes you said goodbye with a single yellow rose
그리고는 노랑 장미 한 송이로 당신은
작별인사를 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