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 한개, 도동, 퇴로 전통마을 이야기

2022. 3. 4. 21:58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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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 전경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 이야기 1부 오래된 미래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 이야기 2부 거대한 뿌리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 이야기 3부 위대한 유산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있는 600여년의 전통을 가진 양반 집성촌. 1984년 12월 24일 대한민국의 국가민속문화재 제 189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 7월 31일에는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안동시 하회마을과 함께 대한민국의 10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유산으로서의 양동마을에는 양동마을만 있는 것은 아니고 양동마을에서 좌측으로 조금만 더 가면 있는 옥산서원, 동강서원까지 함께 등재되었다. 특히나 2013년에는 유네스코가 1972년 선포한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이 2012년 40주년을 맞아 세계 160여 나라에 산재한 981점의 세계유산 전체를 대상으로 심사한 결과 세계유산의 핵심 정신인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장 잘 구현한 26개 사례 가운데 하나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포항시와 인접해 있으며 대구광역시에서 출발하려면 하양, 대구대를 거쳐서 금호교차로에서 포항 가는 28번 국도로 올라가야 한다. 처가입향, 씨족마을, 양반세거지 오늘날 남자와 여자가 혼인 후의 생활하는 방식을 '시집 간다'라고도 표현한다. 이는 조선시대 중후기 이래 유교적 종법 질서가 자리 잡음으로써 양반사회에서 혼인 후 여자가 남자 집에서 사는 시집 간다라는 형태가 보편화된 결과다. 그러나 그 전인 조선 전기까지는 혼인 후 남자가 여자 집에서 사는 장가 간다가 일반적인 생활 형태였다. 양동은 남자가 장가들어 사는 처가입향'(妻家入鄕)의 대표적인 사례로, 풍덕 류씨 남자가 여주 이씨 처가에 장가 들고, 시간이 지나 경주 손씨 남자가 풍덕 류씨 처가에 장가 들고, 뒤이어 또 다른 여주 이씨 남자가 경주 손씨 처가에 장가들면서 정착해 간 사례다. 그런데 조선 전기 이후부터는 유교적 종법 질서가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면서, 장자 상속을 기반으로 같은 성씨의 부계 혈연집단이 대를 이어 모여 사는 유교 문화 특유의 세거지인 집성촌이 자리한다. 이를 '씨족마을'이라 한다. 이 씨족마을은 특히 생산영역(농경지)과 생활영역(거주지), 의식영역(유보지)으로 구성을 마쳤고, 그에 따라 건축물을 세워갔다. 양동은 조선 전기 이후 처가입향으로 맨 마지막에 들어온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 양성이 유교적 종법질서를 신봉하고, 또한 국가적으로 명성을 얻은 인물들을 배출하기 시작하면서 장가 '가지 않고' 시집 '오게' 하면서 집단으로 세거해왔다. 이러한 역사를 약 600년 째 이어오고 있는 양동마을은 조선 시대 남아 있는 씨족마을의 가장 오래된 사례이다. 또한 이러한 씨족마을 공간을 기능적, 경관적으로 완전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 유산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다.(위키백과) 2. 성주 한개마을(경북 성주군), 성산이씨가 대대로 살아 온 전통마을 성주 12경 한개마을 차분하게 고즈넉하게 별고을 성주여행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1리의 한개마을은 조선 세종때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李友)가 입향(入鄕)하여 거주한때로부터 560여년을 내려오면서 성산이씨가 집성하여 살고있는 전통깊은 마을이다.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이 9동에 이르고 있으며, 건축물의 대부분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쳐 건립되었으나, 전체적인 마을구성이 풍수에 따른 전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뿐만 아니라 상류주택과 서민주택의 배치 및 평면도 지역적인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점 등으로 볼 때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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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훤당 김굉필고택 - 멋진 고택카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지동마을(못골)에 위치한 한훤당 고택을 방문하였습니다. 
현재 고택 일부를 리모델링해 한훤당 고택, 한옥카페와 한옥스테이 등 
다양한 전통문화체험도 진행하고 있는데요
현대적으로 꾸민 공간도 있지만 옛날 물건을 그대로 놔두고 꾸민 곳도 있었습니다.
다가오는 봄을 마음 나눌 수 있는 분과 함께 이곳 고택분위기 물씬 풍기는 좋은 
찻집에서 차 한 잔으로 봄맞이 어떠신지요. 

[인물과 풍수] 제03화 "한훤당 김굉필 1부"

[인물과 풍수] 제04화 "한훤당 김굉필 2부"

도동서원 1부 선비의 길, 선비의 세상

도동서원 2부 야외조명시설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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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가을여행/위양지, 퇴로마을, 영남루
☞ 퇴로 여주이씨 종가 청덕당
☞ 퇴로 여주이씨 고가 쌍매당
☞ 밀양 퇴로리 여주이씨 자유헌공 종택 춘향제 2004년
한훤당 김굉필 후손 서흥김씨 한 집성마을(경남 창영군 계상리 계팔과 야동)이
처가입니다. 장인어른의 처가가 장모님의 친정인 한개이며 둘째 처외숙모가
도동에서 오셨고 처외사촌 이원영(뉴욕총영사와 패루대사역임)과 이시영이 
서울에, 막내처외삼촌 아들 이건영과 이돈영이 대구에 살고있습니다. 
처외삼촌 삼형제는 가친과 함께 한학자로써 도교유 하셨으며 
선고유필 석주문집에도 서간문이 있습니다.
장조부님의 처가가 여주이씨 집성촌 퇴로마을이며 오래된 역사의 근윈을 찾아
볼 수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이익성 이우성 두분 형제가
대 학자로써 큰집과 작은집을 이루었고 이우성씨 백씨인 이익성씨는 선고의
벗이여서 저의 처와 인연을 맺게해준 잊을 수없는 고마우신 분이기도 합니다.
처 진외가의 이희발씨는 순천향대학에서 평생을 의학발전에 헌신하였으며
은퇴 후 고향 퇴로의 쌍매당 주인이 되어 옛전통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따지고보면 세상에 인연 아닌 것은 없지요.
저의 집의 가계(家系)를 간략히 살펴보면 격재선생 손조서의 후예로써
증조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석금(石琴) 휘 성헌(成憲)이시며
구한말(舊韓末)에 청백리(淸白吏)로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에 올라 
진주 고을을 다스리며 왜구(倭寇)의 침탈(侵奪)을 방어(防禦)하는데 
큰 공(功)을 세우셨고, 증조모는 세분이셨는데
숙부인 김해김씨, 숙부인 진양정씨, 숙부인 나주임씨입니다.
조부 통덕랑(通德郞) 휘 기훈(基焄)은 6형제 중 넷째로 근검절약하여 농사로 
가업을 일으켜 육대소가(六大小家)에서 칭송을 받았으나 해방 후 상당수 전답이 
분배농지정책으로 환수되어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선고(先考)께서 대를 이어 갖은 고난 속에서 농사와 도정업으로 
가세를 크게 회복시키셨답니다.
조모 공인(恭人) 아산장씨(牙山蔣氏), 모 유인(孺人)밀양박씨(密陽朴氏),
처 효부(孝婦) 서흥김씨(瑞興金氏)
모든 인연으로 맺어진 모든 성씨의 후손들이 
남이 아닌 나의 형제요 나의 자매입니다.
이곳에 평화가 있고, 자유가 있고, 행복이 있지요
좀 더 일찍, 좀 더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좀 더 사람다운 삶을 살아볼 수 있을것이 아닌가
생각이 깊어집니다.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