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산서원(惠山書院)

2022. 3. 6. 00:02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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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산서원(惠山書院) 전경
 
 
혜산서원 내부의 모습. 혜산서원은 밀양 선비들의 발자취를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다.   
 
 
혜산서원은 밀양 선비들의 발자취를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다
 
  
 
 
혜산서원 상례문 앞의 소나무  


  혜산서원(惠山書院)은 정평공 죽석 손홍량(靖平公 竹石 孫洪亮), 격재 손조서(格齋 孫肇瑞), 모당 손처눌(慕堂 孫處訥),
문탄 손린(聞灘 孫遴), 윤암 손우남(綸庵 孫宇男), 다섯 분의 일직손씨 선현들을 모신 서원이다. 혜산서원 앞 입구에는
서원에 祭享된 다섯 분의 이력과 茶院書堂, 怡怡亭을 소개하는 글을 적어놓은 안내판이 있고, 옆에는
격재 손조서(格齋 孫肇瑞)의 신도비가 있다. 격재선생신도비명 병서(格齋先生神道碑銘 竝書)를 지은 사람은
한말(韓末) 의병장으로 유명한 문소 김도화(聞韶 金道和)이다. 격재선생은 단종(端宗) 때 시강(侍講)을 하였는데,
단종에게 바친 충절을 생각하면 사육신처럼 추앙되어야 할 인물이라 평하고 있다. 韓國民族文化大百科事典에 적힌
격재 손조서에 대한 기록을 보면, 학문과 시문의 대가로서 점필재 김종직(
佔畢齋 金宗直 )과 친교가 있었고
김굉필, 정여창 등을 가르친 것으로 나온다. 또 단종 복위를 꾀하던 성삼문 등이 죽은 후 호조참의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절의를 지킨 인물이라 적혀있다.
상례문(尙禮門)을 들어서니 혜산서원의 강당인 정원당(正源堂)이 보이고, 뜰에는 600여년의 수령을
가진 차나무가 있고, ‘정원당’ 현판 밑에 붙어있는 分定에는 향사를 지낸 날짜가 적혀 있었으며 헌관과
제관 면면이 先考의 유계에도 참석했던 분이라 반가웠다. 정원당(正源堂)은 다른 서원의 강당처럼
좌우에 온돌방이 있고, 중앙 대청과 온돌방 사이에는 들어걸개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들어걸개문에 있는
팔각형의 창살이 매우 인상적이다. 양쪽 추녀 밑에는 여의주를 입에 문 용두(龍頭)가 조각되어 있는데, 
서원 강당에 조각된 용두조각은 보기 힘들다. 현재의 혜산서원은 1971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일직 손씨 문중의 서원들을 이곳으로 합치면서 세워졌다.



 
 

   
흙과 돌로 쌓은 담장과 고택, 노송등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강당 앞 차나무, 수령은 약 600년으로 추정된다.
 



 혜산서원 내부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옛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좋겠다.
 

 
혜산서원 입구에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노송이 꿈틀거리는 듯 서 있다
 
 
혜산서원(惠山書院)과 격재 손조서(格齋 孫肇瑞) 
  밀양시 산외면에 일직손씨의 혜산서원이 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한 때 서산고택(西山古宅).
또는 철운재(徹雲齋)라고도 칭하였다. 일직손씨를 일반적으로 칭하기는 안동손씨라 하였다. 안동시 일직면,
여기가 실은 관향 이였기 때문이다. 과거 안동이 안동도호부였을 때 일직면은 그 도호부속에 속하는 속현이었다. 
혜산서원은 그들 손씨의 오현(五賢)을 기리는 재실이기도 하다. 여기에 손조서란 인물을 모시고 있는데 그는 조선시대
대학자 김종직과 친분이 두터웠던 학자이고, 역시 조선시대의 유명인물로 알려진 김굉필, 정여창을 가르친 사람 이였다.
굉필과 정여창의 스승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김종직 한사람으로만 알고 있는데 손조서도 그들의 스승이었다.

한훤당 김굉필(寒暄堂 金宏弼)은 서흥김씨의 큰 인물로 관직에 있었지만 후진 양성에 힘써 쟁쟁한 학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은 하동정씨의 큰 인물로 역시 연산군 때 무오사화에 의해 유배되고
죽임을 당했다. 둘은 모두 성리학(性理學)의 대가였다. 둘은 또 연산군 때 있은 갑자사화로 부관참시를 당하였다. 
격제 손조서는 단종 폐위 때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그는 세종 17년에 과거에 급제하고 집현전의 한림학사를
거쳐서 황해도 봉산군수를 역임하였으나. 관직보다는 학문과 후진양성에 전심하였다.
밀양은 유림으로 인물이 많이 배출되어 서원도 여느 고을보다 많았던 것이다.

 


 
혜산서원 정당앞에 있는 樹齡이 약 600 년 되는 차(茶)나무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차나무가 햇살을 받고
 
 


치자꽃 닮은 꽃을 피웠네요  



 
상례문 입구 소나무 그늘에서 솔향을 맡으랴. 
 
 
 
 
고목이 된 매화나무가 
 
 
 
 
서원 여기저기에 산재하여
 
 
 
 
그 향기가 묵향에 베어든다
 
 
 
오랜 풍상을 격어온 매화나무
 
 



이른 봄, 그 향기 그윽하다.


 
혜산서원 정원당(강당) 추녀밑의 용두
 
 
 
 
정원당 대청마루엔 녹차향이 은은하고
 
 
 
 
전통문살- 가운데 작은 아기문살이 이채롭다. 
 
 
 
 
한지를 바른 나무문살에 베어 든 오랜 墨香
 
 
 
 
반쯤 열어두거나 하여 밖의 햇살과 빗소리 들으랴.
 
 
 
 
 화창한 초여름 綠陰芳草勝花時
 
 
 
 
이팝나무에 쌀알같은 꽃이 피네
 
 
 
 
대청 그늘에서 새소리 듣다 보면 仙境이 따로없고
 
 
 
심유당에선 시 옲는 정취 절로나네
 
 
 
 
들어걸개문에 조각된 팔각형의 창살은 장인의 솜씨
 
 
 
 
소리없는 공간이 여기 있네
 
 
 
 
올해는 찻잎따는 사람도 발걸음 없어 적막하기 그지없고..
 
 
 
 
서산고택은 옛 선비들의 분리된 공간 
 
 
 
 
담 너머 거문고 가락 들릴것 같아 마냥 귀 기우리네
 
 
 
 
600년 된 차 나무라니.. 그 귀함으로 칭송받네
 
 
 
 
노오란 창포 사임당이 또 있을가, 이 손씨 문중에...
 
 
 
기와와 돌담의 오래된 역사 

<아래>배롱나무 꽃그늘 혜산서원 비오는 날 사진 다섯 컷




  
 


 


 


 





격재선생신도비각(格齋先生神道碑閣) 

 

 
격재선생 신도비명 병서



 
一直孫氏 五賢 약력 

 


사진을 150%로 확대하니 영한으로 겨우 읽겠네요



혜산서원 안내문  
 

  
중앙 정원당 
 
 

  
동쪽 수도헌
 


 
왼쪽의 심유당  
 
 

 
五賢을 모시고 있는 숭덕사
 
 
 

숭덕사 전경
 
 

정평공 영정(靖平公 影幀)



 
서산고택 의 현판
 


   
서산고택에서 철운재 의 현판
 


 
이이정(怡怡亭) 편액
 
 
이이정(怡怡亭)
 
 
 

다원서당(茶院書堂)




다원재(茶院齋)




동재(東齋)



서재(西齋)
 
 
 

서산고택(西山古宅) 전사청
 
 

   
혜산서원의 초입에 위치한 혜산교 
 


   
영모재 유허비 옆에 500 여년 된 老松
 

 
통계 

 

 

      격제선생 신도비명병서 格齊 先生 神道碑銘竝書


      국가 경태지제요선순수천명유귀이독유구신십유이인수정헌지

      國家 景泰之際堯禪舜受天命有歸而獨有舊臣十有二人守靖獻之

      의육신사지육신거지적수부동이의즉일야약내심어사이적어생육

      義六臣死之六臣去之跡雖不同而義則一也若乃心於死而跡於生六

      이가칠자기유격제손선생호명호선생역 단조시강지신야견 세조

      而可七者其惟格齊孫先生乎鳴呼先生亦 端廟侍講之臣也見 世祖

      이극이병기하거두문사절즉시생육신지적야문 노능빈청이추흉

      莅極而炳幾遐擧杜門謝絶則是生六臣之跡也聞 魯陵賓天而搥胸

      호곡마서저초죽사서육신지심야연즉공지소이시종처지자불여육

      號哭未死自處則是死六臣之心也然則公之所以始終處之者不與六

      신일체호특기적심회인무득지지이연당시즉점필제선생지지고유

      臣一體乎特其跡沈晦人無得知之耳然當時則佔筆齊先生知之故有

      포홀환 군자용자슈새죽엉하중왕고입제공취유집이서지왈은지

      袌笏還 君之咏至後世則我外曾王考立齊公就遺集而序之曰殷之

      삼인일사이생이공자구허기인이기동출어지성측달이전기애 군

      三仁一死二生而孔子俱許其仁以其同出於至誠惻怛而全其愛 君

      지심고야우황수사지과불급어선생이위호기정 사직의구즉구구

      之心故也又況收司之科不及於先生而位號己定 社稷依舊則區區

      사일지의무소시어기간우왈공지경학문장박아순정여점필옹상상

      事一之義無所施於其間又曰公之經學文章博雅純正與佔筆翁相上

      하우득대현여한두위지종유이부상삼년지후추복모상지유작설지

      下又得大賢如寒蠹爲之從遊而父喪三年之後追服母喪至有綽楔之

      정즉절의지유소본사가지의어호기진지의 정조경신자 상유유손

      㫌則節義之有所本斯可知矣於乎其盡之矣 正廟庚申自 上又有孫

      모명절상세현록지 교순조초원인도신계특 증천관아경어시이심

      某名節詳細懸錄之 敎純祖初元因道臣啓特 贈天官亞卿於是而心

      여적서기유사어천하결선생이사발지자장유탁영지지시취학불대

      與跡庶幾有辭於天下歟先生以사拔之姿장有卓영之志始就學不待

      편독이자려일송사물잠위일용복응지자우취심근이서숙복불기여

      鞭督而自勵日誦四勿箴爲日用服膺之資又取心近二書熟複不己與

      점필제취금헌제현강마도의울연위사문창한두양선생개이사례전

      佔筆齊醉琴軒諸賢講磨道義蔚然爲斯文倡寒蠹兩先生皆以師禮尊

      사지차기학문지성야임자승상상을묘수석갈위집현전학사후이병

      事之此其學文之盛也壬子陞上庠乙卯遂釋褐爲集賢殿學士後以兵

      조좌랑출지봉산군을해투불이귀차기이력지대개야기척시일사자

      曹佐郞出知鳳山郡乙亥投紱而歸此其履歷之大槩也其瘠詩曰杜字

      역여아무단주야제지여몽주공좌고군지구천경서북앙면은하지십

      亦如我無端晝夜啼至如夢周公佐孤君之句天傾西北仰面銀河之什

      막비혈 중사출이직여묵태씨채미일결동전어만세하필이유상지

      莫非血경中瀉出而直與墨胎氏採薇一闋同傳於萬世何必以遺箱之


      적요위한재근안선생휘조서장니보호왈격제일직인야손씨현어고

      寂寥爲恨哉謹按先生諱肇瑞字仁甫號曰格齊一直人也孫氏顯於高

      려대광판삼사정평공휘홍량기고조야증조휘득수좌승지조휘영유

      麗大匡判三司靖平公諱洪亮其高祖也曾祖諱得壽左承旨祖諱永裕

      한성부윤고휘관장흥부사비경주김씨부정흡여생졸년월일병무전

      漢城府尹考諱寬長興府使妃慶州金氏父正翕女生卒年月日並無傳

      배진양하씨광흥승수여원정공즙지후야생이남윤하광흥승연한장

      配晉陽河氏廣興丞潚女元正公楫之後也生二男胤河廣興丞胤漢長

      흥부사이녀유수원문정랑고맹원부사직승이남순무주부순 참봉

      興府使二女柳秀源文正郞高孟元副司直丞二男筍茂主簿筍혹參奉

      부사일남순계참의주부이남세기진사세경참봉여부진재선생지묘

      副使一男筍桂參議主簿二男世記進士世經參奉餘不盡載先生之墓

      구유단갈내자 증작가선계이품범의입비이수구 봉우신도일방

      舊有短碣迺者 贈爵嘉善階二品法宜立碑螭首龜趺奉于神道一方

      유신개연상모여본손제원의벌일석석기구책현시어불안자고모황

      儒紳慨然尙慕與本孫諸員議伐一石石旣具責顯詩於不按自顧耄荒

      성부족이감차시복념선군자귀와선생 서기문집재재편수불안어

      誠不足以堪此施伏念先君子龜窩先生장敍其文集載在篇首不按於

      선생사행이유인연의감사제수불규이위지명명왈

      先生事幸而有寅緣矣敢辭諸遂不揆而爲之銘銘曰

      유기강대극천번지혹종어인부식인기득어동한사육생육일체여관

      有氣剛大極天蟠地惑鍾於人扶植人記得於東韓死六生六一體如貫

      상일열열유시격옹적회심단견기여독두문여안오운무몽두자하처

      霜日烈烈維時格翁跡晦心丹見幾如獨杜門如岸五雲無夢杜字何處

      백인가도사작난어슈여동귀약석삼인개공충의왈유소본패복심근

      白刃可蹈辭爵難於誰與同歸若昔三人蓋公忠義曰有所本佩服心近

      강마거금막회자적막역자심조두재문효사유즉백세수원이충공격

      講磨畢琴莫晦者跡莫易者心鳥頭在門孝思維則百世雖遠彛衷共激

      유유직전관이소장내탁정민영소무강

      幽幽稷田冠履所藏乃琢貞珉永昭無疆


      후학전행의금부도사한소김도화 찬

      後學前行義禁府都事聞韶金道和 撰

      후학유학밀성박숭목 서

      後學留學密城朴崇穆 書

      후학통훈대부행장수현감경주진관병마절제도위려강이매구 전

      後學通訓大夫行長수縣監慶州鎭管兵馬節制都尉驪江李邁久 篆